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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공찬전(비교)

r28 vs r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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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2>"《설공찬전》은 내용이 요망하고 허황하니 금지함이 옳다. 그러나 법을 세울 필요는 없다. 나머지는 윤허하지 않는다."
2323>하였다.
2424>-----
25>[[https://sillok.history.go.kr/id/kka_10609002_001|중종실록14권, 중종 6년 9월 2일 기유 1/2 기사]]
25>[[https://sillok.history.go.kr/id/kka_10609002_001|중종실록 14권, 중종 6년 9월 2일 기유 1/2 기사]]
2626결국 설공찬전은 인기도서가 되자 중종에게까지 이 소식이 들어가는데, 사헌부에서는 설공찬전이 한문과 한글로 번역하여 전파되어 백성들을 홀리게 한다는 내용으로 책을 압수하고 소장자는 처벌하자고 주장했으나 중종은 설공찬전만 금지하고 처벌은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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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9>○命燒《薛公瓚傳》, 其隱匿不出者, 依妖書隱藏之律, 治罪。
3030>《설공찬전(薛公瓚傳)》을 불살랐다. 숨기고 내어 놓지 않는 자는, 요서 은장률(妖書隱藏律)로 치죄할 것을 명했다.
3131>-----
32>[[https://sillok.history.go.kr/id/kka_10609005_007|중종실록14권, 중종 6년 9월 5일 임자 7/7 기사]]
32>[[https://sillok.history.go.kr/id/kka_10609005_007|중종실록 14권, 중종 6년 9월 5일 임자 7/7 기사]]
3333하지만 사흘 뒤 설공찬전을 압수해 태우고 몰래 소장한 이는 처벌하라고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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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6>○命罷仁川君蔡壽職, 以其撰《薛公瓚傳》, 造怪誕之說, 形諸文字, 使人信惑。 依左道亂正扇惑人民律, 憲府照以當絞, 只命罷職。
3737>
3838>인천군(仁川君) 채수(蔡壽)의 파직을 명했다. 그가 지은 《설공찬전(薛公瓚傳)》이 괴이하고 허탄한 말을 꾸며서 문자로 나타낸 것이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믿어 혹하게 하기 때문에 ‘부정한 도로 정도를 어지럽히고 인민을 선동하여 미혹케 한 율(律)’에 의해 사헌부가 교수(絞首)로써 조율했는데, 파직만을 명한 것이다.
3939>-----
40>[[https://sillok.history.go.kr/id/kka_10609018_002|중종실록14권, 중종 6년 9월 18일 을축 2/2 기사]]
40>[[https://sillok.history.go.kr/id/kka_10609018_002|중종실록 14권, 중종 6년 9월 18일 을축 2/2 기사]]
4141이후 채수를 파직하고 사헌부에서 백성을 선동한 죄로 교수형에 처하자고 주장했으나 중종은 거절하고 파직으로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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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3이렇게 설공찬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가 싶었지만... 이문건의 묵재일기 3권 안쪽 부분에 누군가 "설공찬이"로 시작하는 설공찬전을 필사하였고 1996년 봄 국사편찬위 사료조사실에서 묵재일기 탈초를 의뢰받은 서강대학교 이복규 교수가 3권 내용을 확인 하던 도중 책 뒷면에 다른 한글 필사본들 사이에 필사되어 있는 설공찬전 필사본 일부를 다시 발견하였다.[* 이복규. (1997) ‘< 설공찬전 > 국문본의 발견 경위와 의의’. 고소설연구, 3(0), pp. 5-25.] 일부인 이유는 이 필사본이 일부가 누락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하를 데려온 뒤 손을 삶으라고 하자 성화 황제가 행동하려는 곳에서 끊긴다.][* 이로 인해 다른 책 안쪽에도 나누어서 필사했으나 소실 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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