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애 사건

최근 수정 시각: 2025-08-22 11:3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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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2. 사건 정황
3. 사건 이후
4. 둘러보기

1. 개요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아동 학대 사건.

특히 이 사건은 아동 학대 사건들 중에서도 악명이 가장 높고 한국의 아동복지법 개정의 계기가 되었다.

배우 신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2. 사건 정황

더 상세한 내용을 다룬 자료.#

1999년에 그것이 알고싶다의 '빗나간 믿음 - 자식의 치료를 거부한 부모' 편이 방영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이 사건이 대중에게 알려졌다.

김신애는 1995년에 소아암의 일종인 윌름즈 종양 진단을 받았다. 분류상 암이지만 당시의 의료 수준으로도 적절한 시기에 종양을 제거하고 약물치료를 병행하면 완치율이 80~90%에 달하는 비교적 가벼운 질병이었다. 하지만 부모들은 신앙의 힘으로 치료하겠다며 4년 동안 방치했다.

김신애는 촬영되었을 당시 9살이었고, 몸무게가 20kg이었다. 종양이 무려 5kg, 즉 몸무게의 1/4 정도를 차지했다. 체내의 종양이 증식해서 만삭의 임산부처럼 배가 튀어나왔다. 몸은 뼈만 남은 채 신애 양은 "아프다. 치료받고 싶다." 고 취재진들을 향해 울부짖었다. 그런데 부모들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신애 양이 아프다고 아버지에게 호소하는데도 "나한테 이야기하지 마. 하나님한테 호소해."라고 하였다.

당시 그것이 알고싶다 취재진과 인터뷰를 한 교회의 목사는 예전부터 부모에게 신애 양을 어서 병원에 보내라고 설득하던 중이었는데 이 부모들이 목사의 충고를 무시해서 취재진 앞에서 "말로 어찌 할 수 있는 위인들이 아니다. 강제로 해야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취재진들은 도움을 구하기 위해 취재한 영상을 당시 국회의원들에게 가지고 가서 보여주었는데 그 영상을 시청한 국회의원들도 할 말을 잃었다.

3. 사건 이후

이 사건이 방송으로 세간에 알려진 이후 국회의원들과 사회 단체가 신애 양을 치료받게 했지만 이미 종양혈관으로 전이되었다.

1998년에 발생한 영훈이 남매 사건과 이 사건을 계기로 2000년아동복지법이 개정되었다.

SBS 창사 20주년 특집에서 김신애 양은 3년 뒤인 2002년 5월 사망했다고 한다. 이미 골든아워를 넘긴 상태에서 수술로 무리가 가해진 몸에 잘못된 예후관리까지 더해져서 심한 후유증이 남아서 수술했음에도 증상이 계속 악화되어 신애 양은 병세가 나빠져 다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료진이 치료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개월 후에 사망했다. 하지만 부모는 전혀 슬퍼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김신애 양을 취재했던 PD가 신애 양이 세상을 떠나기 몇 주 전에 다시 만났다. 당시, 신애 양은 병실의 벽만 바라보며 누워있었고, PD를 향해 얼굴을 돌아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이 부모들의 행적을 회고했다. # 아버지는 자살했고 어머니는 실어증 및 정신이상에 시달렸으며 이후 동생들은 고아원에 보내졌다고 한다.

간혹 인터넷에서 신애의 부모가 생활고로 인해 신애의 치료를 끝끝내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는 낭설은 사실이 아니다. 신애에게는 두 동생이 있었으며 신애 사건이 알려지기 전(즉 치료를 포기하고 방치하던 시기)에도 동생들의 양육은 정상적이었다. 또한, 1999년 해당 사건이 알려지고 나서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지원 조치를 취할 것을 지시하고(1) 2000년에 아동복지법이 개정되게 되었기에(2) 정치계에서의 관심이 컸고, 모금 운동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신애의 치료를 맡았던 삼성서울병원에서도 수술 및 입원비를 전액 무료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했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애의 부모는 치료를 중단한 것이었다. 2차 입원은 검찰의 강제소환으로 인한 조치였다. 최초 제보자는 선교회의 선교사였다. 취재 중 아버지는 병원만은 안 된다며 가스통을 사용하며 취재진을 위협했다.

4. 둘러보기


(1) 이 덕분에 한시적 생활지원대상자 지원을 받았다.
(2) 아동학대 시 부모의 친권 제한, 방임과 유기가 아동학대의 범주이다.
(3) 최종 지원 규모는 알 수 없다.